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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균형잡힌 세상보기 | Posted by 그로칼랭 2009/05/25 00:04

노무현님 영면하소서

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비판가였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이여, 편히 잠드소서.

 

저는 노무현의 죽음을 보면서

좀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른바 대통령제의 비용 혹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취약점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무흠결의 정치체제가 결코 아닙니다. 전체주의에 비해 상대적 우월성을 가질 뿐입니다.

민주주의를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정치체제 내지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정치적 데마고기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전체주의보다 좀 더 우월한 정치체제일 뿐입니다. 많은 흠결과 구조적 취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국식 군주제의 미국적 변형태인 대통령제는 우리가 흔히 내각제라 부르는 의회제에 비해 효율성과 능률성의 장점이 있는 반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단극자장(single magnetic)의 사회, 소용돌이의 정치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더욱 심할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제와 권한남용은 개인의 퍼스낼리티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특히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의 대통령제보다도 권력의 집중과 남용의 특징이 두드러졌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제의 역사를 보면 1827년 John Adams 대통령 시기, 1851년 Millard Fillmore 대통령 시기, 1861년 Abraham Lincoln 대통령 시기, 1885년 Grover Cleveland 대통령 시기, 1911년 William Taft 대통령의 시기 등 초기 미국 대통령제의 현실에서도 부패와 엽관제의 폐해가 극심했습니다. 가장 가까이는 클린턴과 부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부패, 권한남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1919년 우리가 잘 아는 Woodrow Wilson시기에 이르면 대통령제의 제도적 특성상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권한남용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정치권과 언론,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됩니다.

 

전두환, 노태우처럼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할 정도의 헌정체제를 뒤흔드는 중대범죄가 아닌 이상 대통령 패밀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권한남용은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인식하고 체제의 안정을 위해 묻어두는 관행이 확립됩니다. 이를 perversion doctrine이라고 합니다. 이는 법에 명시된 조항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닥트린입니다. 미국 대통령제의 안정성을 가져온 요인은 바로 이러한 건설적인 관행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제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참조할만한 부분입니다.

 

노무현의 600만달러는 서민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돈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저는 노무현과 그 패밀리의 '부주의한 행태'를 찬양하거나 변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그 오랜 시간 동안 털고 털어서 나온 최종 액수가 6백만 달러라면 한국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간주해도 될만한 액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대통령이 1년 동안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쓸수 있는 돈이 대통령실에 배정된 특수활동비 100억, 행정안전부에 자치단체 교부금 명복으로 배정된 450억 등 550억입니다. 2007년 예산기준으로 대략 그렇습니다(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1년에 550억, 5년이면 2750억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국 대통령의 권한과 위상을 생각하면 정말 600만 달러, 즉 60억 정도는 많은 액수가 아닙니다. 또 이 돈이 직접적인 이권사업에 대한 청탁과 관련되었다는 정황증거도 없습니다.

 

우리 한번 왜 이번 사건이 발생했는지 생각해 볼까요?

사실 이 사건은 김영삼, 김대중정권에 대한 반면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식들을 국내에 두면 사고를 치니까 아예 해외로 보내버려 사고의 근원을 없애버리자. 뭐 이 정도의 아이디어에서 아들과 딸을 미국에 보내는데 비용이 필요했겠지요.

대통령의 아들과 딸을 일반유학생과 같은 수준의 기숙사나 아파트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국격이나 보안상의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의 검찰소환과 기소, 재판이라는 국격의 손상을 감수할 정도로 치명적인 부패사건도 아닙니다.

극우파들은 항상 자유주의자들의 박정희 비판에 대해 자해적 역사관이라고 거품물고 비난해왔는데, 현 집권 우파세력이야말로 소탐대실의 자해적 사고로 똘똘뭉친 사람들입니다. 철학과 균형감각이 없으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국정운영은 큰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승만부터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대통령의 권한남용, 뇌물스캔들이 존재해왔습니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헌정체제를 유린한 독재를 했거나 국가경제를 뒤흔들 정도의 치부를 한 경우가 아니라면, 승자독식의 한국 대통령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통령 패밀리와 관련된 권한남용은 퍼버전 닥트린을 적용하는 관행을 만들때입니다.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정한 비용이 들 듯이, 대통령제를 운영하는데도 일정한 사회적, 금전적 비용이 듭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부시와 체니 패밀리와 관련된 권한남용 스캔들이 있었지만, 오바마나 힐러리 모두 그냥 넘어갔습니다. 또한 오바마와 힐러리도 상원의원 재직 당시 권한남용 스캔들이 선거과정에서 불거졌지만, 언론과 공화당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정도는 대통령제와 연방제의 비용이라고 생각했고 국민들도 이를 받아들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건설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노무현 정도의 스캔들은 한국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이명박과 검찰, 언론의 천박성과 부질없은 권력욕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정치에서 검찰은 더 이상 법의 수호자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스스로 내다버렸습니다.

안타깝지만 노무현이야말로  정치의 사법화(JOP), 다른 수단의 정치(PBOM)의 희생양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과 함께 이 기회에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취약성(비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입니다. 

 

노무현의 자살이 제2의 촛불정국으로 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이에나에서 순한 양으로 변신한 한국 언론, 특히 조중동의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국민들에게 쫓겨나고, 군인들에게 쫓겨나고, 최측근의 총에 맞아 죽고, 국민학살과 천문학적 축재로 감옥가고, 자살하고, 또 무엇이 남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보다 바람직한 자세 혹은 태도라고 할까요?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국민이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원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자의적으로 이러한 자발적 행위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집권세력이라는 이유로, 심지어는 파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무현의 조문참여를 가로막는 노사모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결코 한국정치의 밝은 면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조문을 둘러싼 노사모의 편협한 행태야말로 노무현을 당파적 인물로 가두어 버리는 저급한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무현의 명예에 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승화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분노의 직접적 표출보다는 분노의 승화가 망자를 역사 속에 더 빛나게 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요?

[남의 글] 좋은 글 나누기 | Posted by 그로칼랭 2009/05/07 13:36

노무현 모델의 붕괴 이후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07 오후 12:04:57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매우 복잡한 심회를 느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이 범죄수사의 피의자가 된다는 점은 매우 놀랄 일이다.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보는 듯한 집합적 데자뷰는 역사의 판결이 순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대통령에 비해 액수가 적다거나, 구속수사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은 모두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아주 작은 파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게이트로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과 전두환 대통령의 구속처럼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환은 노무현 모델 또는 노무현식 정치의 종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치권의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에서 출발한 정치인 노무현은 한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 볼 수 있었듯이 노무현 정치는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검찰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노무현 모델의 등장과 쇠퇴

2003년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당시 많은 사람들은 큰 기대에 휩싸였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가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하고 측근 안희정이 나라종금 비리로 연루되면서 이내 실망감이 커졌다. 당시에 노무현과 386정치인의 등장에 열광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난 그들에게 "지금처럼 계속 간다면 노무현은 진보세력을 망칠 것이고, 안희정은 386세대를 망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대북송금 특검은 민주당 분당의 서막이 되었고 나라종금 비리는 수많은 게이트의 시작에 불과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시작한 노무현 정부는 계속 방향감각을 상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왜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는가?

노무현 모델은 과거의 정치 모델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모델의 핵심적 요소는 '반(反)정치의 정치'로 볼 수 있다. 정치적 문제를 집요하게 비정치적 방법으로 해체하는 정치를 추구했다. 그는 여의도 정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정당을 버리고 탈당했다. 대의제 정치의 입법보다 인터넷과 거리의 대중정치에 몰두했다. 국민이 요구하는 사회적 형평성의 강화보다 정권이 요구하는 탈지역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 후 노무현식 정치는 노사모, 인터넷, 그리고 승부사적 정치공학에 몰입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노무현 모델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먼저,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일으킨 노사모는 탈정치의 대중운동을 벌였다. 이는 미국의 오바마를 지지했던 오바매니아(Obamaina)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무브온(MoveOn), ACORN, Netroots Nation 등 수많은 오바마 지지자들은 모두 풀뿌리 조직에 참여하는 동시에 민주당의 당원으로 활동했다. 반면에 노사모는 정치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탈정당, 탈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치가 공적 영역을 확대하는 대신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사적 영역에 머무르게 하는 퇴행적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떠나던 날 노사모는 노란 풍선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 모습이 마치 재벌 총수의 비리를 엄호하는 직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터넷이 선출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제는 인터넷을 모르고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인터넷은 유권자와 정치인을 연결하는 강력한 소통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이 정당과 의회를 대체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의 대통령처럼 의회의 반대파를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기보다 국회와 정당을 무시한 채 인터넷을 통해 곧 바로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모습은 대의제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비쳤다. 노무현 모델에서는 국회의 민주당과 민노당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도 모두 거추장스러운 반대파일 뿐이었다.

셋째, 노무현 모델은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정치를 펼치기보다 탈지역주의를 위한 정치공학을 통한 승부수를 중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핵심인사를 제거하고 민주당을 분당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호남과 연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영남 민주화세력이 호남에 기대고 있다는 자신만의 콤플렉스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하지만 호남에 정치적 기반을 가진 민주당과 결별하면 영남의 지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순진한 계산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의 지지는 전혀 확대되지 않았다.

급기야 2005년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탈지역주의 정치공학의 계산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반정치적 정치공학은 연정 파트너가 되길 기대했던 한나라당과 아무런 사전교섭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에게도 일언반구 알리지 않은 '깜짝쇼'로 연출했던 것이다. 사실 깜짝쇼의 원조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조차 '3당합당'을 위해선 치밀한 정치협상(야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와 같은 노무현식 정치모델은 철저하게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대를 약화시켰다. 풀뿌리 정치조직과 인터넷은 민주적 시민문화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 정치참여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현실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나라의 사례를 보아도 참여민주주의란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키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노무현 모델은 사실상 국회와 정당을 (심지어 여당조차도) 감정적으로 무시하거나 정책결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했다.

이러한 노무현 모델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도덕성이었다. 사실 도덕을 정치의 무기로 강조하는 전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찍이 유교정치는 '도덕정치'를 통하여 성장했다.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을 강조하던 유학은 도덕적 기준을 정치의 핵심적 요소로 보았다. 이 기준에 따라 정통유학과 사문난적을 구분했다. 모든 세력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본다. 하지만 노무현의 도덕정치는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쳤다. 청문회 스타가 권력의 정점을 지나 부패정치인의 나락으로 떨어지자 노무현 모델도 힘없이 무너졌다.

도덕정치와 반대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올바르나 약한 것보다 강하지만 틀린 것이 낫다"고 말했다.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읽고 깊은 공감을 가진 클린턴은 도덕의 힘과 함께 권력의 힘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클린턴은 르윈스키 스캔들로 보수파의 맹공격을 받았지만 그의 인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현실정치에서 제시한 온건하고 대중적인 정책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보수적 공화당원은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민주당원과 중도파 유권자에게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놓았다.

정책 레짐의 보수화와 지지층의 붕괴

노무현 모델이 만든 가장 큰 비극은 철저하게 현대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정책 체제(policy regime)의 강화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수년이 지나도록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달리 말하면 집권 직후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민주당을 버리고 달려간 곳은 '2만불 시대'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서 많이 볼 수 있던 낯익은 구호는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다. 정말 그들 말대로 외교안보정책은 진보적 기조를 제시하는 반면, 경제정책과 정책은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기로 의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는 예측대로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요란한 '진보'의 나팔소리와는 달리 별로 진보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사실 보수세력이 집요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과 스타일을 물고 늘어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서 별로 급진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 법과 질서의 강조, 노사분규의 자율해결 원칙, 아파트 원가공개 반대,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등은 진보세력보다 보수세력에 더 가까운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에 열광했던 대학생과 청년층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5년 사이 대학생 등록금은 해마다 약 10%씩 인상했지만,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금리는 계속 올라만 갔다. 전체 고용인구 가운데 고용율은 60%를 밑돌고, 비정규직 비율은 27%에서 36%로 급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이후 사회적 불평등은 계속 악화되었다.

노무현 모델이 추구한 탈정치화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의회를 통한 입법 활동의 경시 또는 포기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언론법, 국가보안법 등 소위 '개혁입법'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정치적 기반은 더욱 협소해졌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민주당의 분당과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는 대신 민주당, 민노당,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내세운 광범위한 '복지연합'을 추구했다면 전국적 차원에서 정치적 기반이 더욱 강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의 경험은 한국 정치에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준다. 루스벨트가 중산층과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뉴딜연합'을 형성하면서 민주당은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이 아니라 광범위한 계층을 기반으로 한 전국정당으로 발전했다. 루스벨트 정부가 노동조합의 권리를 확대하고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부에서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급증했다.

뉴딜연합이 남부에서 세력을 확대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남부는 산업화가 늦어 북부에 비해 가난했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북부 민주당의 진보주의자들은 남부의 지지를 얻기 위한 대가로 흑인을 차별하는 짐 크로법(Jim Crow Law)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이 점은 루스벨트가 얼마나 현실주의적 정치인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1964년 존슨 정부가 흑인의 권리를 확대한 민권법에 서명하자 남부의 백인은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이미 민주당은 흑인 민권운동을 거부할 수 없었지만 남부 백인의 지지를 잃을 것은 불을 보듯이 뻔했다.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은 도덕적으로는 옳은 일이었지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남부는 점차 공화당에 기울었고 2000년 부시 행정부가 권력을 장악할 때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와 비교해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가 경험한 오류는 한국 정치가 지역 이슈에서 계층 또는 복지 이슈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이는 무척 뼈아픈 일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한국에서 지역주의 문제는 '호남 문제'가 아니라 왜 영남의 중산층과 노동자들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효과적인 탈지역주의 전략은 노무현 모델의 정치공학처럼 위로부터 한나라당과 연합하는 전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영남의 중산층과 노동자와 연대하는 계층연합의 전략이 되어야 했다. 만약 당시 노무현 정부가 남부의 백인 노동자를 지지층으로 확대한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의 사례와 같이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최근의 검찰 소환도 사실상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진보적 정치전략과 한국형 뉴딜연합

노무현 모델이 붕괴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염없이 슬퍼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오류에서 새로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뉴민주당 플랜'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국민에게 변화와 쇄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없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선전했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와 친박의 갈등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얻은 결과이지 자력으로 이룬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는 물론 다음 대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노무현 모델이 사라진 민주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모든 새로운 출발은 과거에 대한 냉정한 반성과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1992년 4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영국 노동당은 자신들의 당헌과 선거강령을 재평가하기 위해서 '사회정의위원회'(Social Justice Commission)를 만들었다. 당대의 진보적 학자가 주도한 사회정의위원회는 노동당의 비전과 전략을 새로 수립할 것을 요구했고 과감한 정당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신노동당(New Labour)의 현대화를 통해 전통적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이로써 새로운 수권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의 민주당은 무엇보다도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부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왜 2007년 대선에서 패배했는지 처절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보다 더 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을 포함한 개혁진보세력은 무엇보다도 경제관리에 유능한 세력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선거에서 경제 이슈를 뺏겨서는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부자를 위한 감세와 재벌 편향의 한나라당 정책을 비판하고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을 위한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유층을 위한 감세 대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를 요구해야한다.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은 댐을 건설한 토건사업이 아니라 사회복지를 통해 서민층의 소비를 촉진하는 사회정책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서 경제정책은 사회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고용을 확대하는 동시에 노동력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조세정책과 교육정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볼 수 있듯이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중산층의 즉각적 복원"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부자에 대한 증세 법안을 내세워 커다란 지지를 얻었다.

한국 정치의 새로운 정책 대안은 대의제 정치에서 현실적인 방안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입법자로서 의회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 정당은 시민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항상 주목하면서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새로운 진보세력은 정당과 시민사회의 풀뿌리 정치에서 출발하여 더 광범위한 대중과 결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공직선거 후보선출뿐 아니라 정강정책을 전당대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더 넓은 차원에서 정당이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정하고, 이를 토대로 노사정 사이의 합의를 만드는 사회협약을 추진해야 한다. 1990년대 선진산업경제의 다양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대화는 임금과 경제 문제뿐 아니라 교육, 의료, 주택, 연금 등 복지정책을 포함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국가의 등장이 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는 광범위한 사회세력이 참여하는 '한국형 뉴딜연합'을 시급하게 형성해야 한다.

역사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진보의 길은 무력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정치의 정책 레짐의 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는 20세기 초반 독일의 뛰어난 사상가 막스 베버가 말한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에 관한 유명한 강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성직자는 행위의 결과에 관계없이 심정윤리를 강조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철저하게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정치인은 악마와 손을 잡고서라도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베버는 책임윤리야말로 진정한 정치가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이라고 보았다. 선과 악의 이분법의 심정윤리에 사로잡힌 노무현 모델은 정치를 공적영역이 아니라 사적영역으로 후퇴시키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은 철저한 아마추어였고, 너무나 슬프게도 최소한의 도덕성도 지키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노무현 모델이 붕괴하는 역사적 시점에 우리는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외롭게 서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시선은 역사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가진 386세대가 등장해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손호철 칼럼] FTA본부장 공천? 무식하거나, 오만하거나

기사입력 2009-04-20 오전 6:47:11

가뭄에 단비. 그렇다. 지난 여름 촛불이 꺼진 뒤 계속된 악몽 속에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의 김상곤 한신대 교수의 승리는 너무도 오랜만의 쾌거였다. 그리고 승리의 원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라며 이같은 심판은 4.29 재보궐 선거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반가워하고 있다. 물론 김상곤 교수가 중산층이 주를 이루는 수도권의 신도시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사교육비 등에 고통받던 유권자들이 MB의 '미친 교육'을 심판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당이 배제된 교육감 선거의 특성, 낮은 투표율, 진보(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중단체 등)와 개혁(민주당, 시민운동 등) 진영의 좌우를 아우를 수 있었던 김 교수의 인품과 지도력 등 다른 요인들도 많은 작용을 했다. 특히 한나라당이 주장하듯이 진보개혁 후보는 단일화된 반면 보수후보들은 분열하여 난립한 것도 중요한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진보, 개혁 진영 내에 반MB 연대론이 힘을 받게 됐다. 사실 올 1월 1일 신년 칼럼("'2009 명박대첩', 의지의 낙관과 '신발'로 무장하자")에서 지적했듯이 개인적으로 반MB 연대에 무조건 반대하지도 않지만 이를 무조건 지지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즉 우리 시회의 주전선은 더 이상 민주당 등이 주장하듯이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전선이지만 이에 매몰되어 "민주당과의 일체의 연대도 부정하는 좌익소아병, 그리고 정반대로 MB악법 저지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포기하는 대동단결론, 이 둘을 모두 경계"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아가 반MB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책(특히 이에 따른 민생파탄)에 대해 사과하고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이 이번 재보궐 선거 중 유일한 수도권의 국회의원 선거로서 '진검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인천 부평을에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대책본부장을 역임한 홍영표 씨를 낙점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뿌리를 두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현재의 민주당도 FTA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주당이 FTA 핵심관계자를 공천한 것이 언뜻 보기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 부평을에 출마한 홍영표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정세균 대표 ⓒ뉴시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MB 연대를 강하게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과 민중단체,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반대할 FTA 핵심관계자를 핵심승부처에 공천한 것은 충격적이고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진보세력에 대해 앞에서는 반MB 연대를 하자고 악수를 청하면서, 뒤로는 뒤통수를 친 것이다.

처음 이 뉴스를 접할 때 느꼈던 충격을 벗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민주당이 왜 이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자 크게 보아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첫째, 민주당이 워낙 멍청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중단체 등이 평소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것을 모르고 홍 씨를 공천한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그 정도로 무식하겠는가? 사실 홍 씨가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범위한 연대체인 한미 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는 홍 후보를 공천심사대상에서 제외시키라고 요구하면서 민주당이 그를 공천할 경우 공개적인 규탄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그를 공천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리가 없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그리고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등이 홍 후보를 반대하는 것을 알지만 "지들이 반MB 연대 후보로 민주당 후보인 홍 후보를 밀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오만함 때문에 홍 씨를 공천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오판을 한 것이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측은 선거법의 위반여부와 상관없이 홍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도 결코 홍 후보를 반MB 연대 후보로 지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홍 후보를 공천할 때 민주당 지도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남는 마지막 가능성으로 앞의 두 경우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말로는 반MB 연대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경우 얼마든지 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같은 진심이 이번 공천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즉 자신들이 주장해온 반MB 연대를 포기하더라도 홍 후보의 장점(경쟁력?)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인물 중에 FTA 국내대책 본부장을 공천할 수는 없다.

부평을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당이 반MB연대를 포기했다는 증표 내지 민주당의 그간의 반MB 연대론이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는 또 있다. 그것은 울산북구이다. 울산은 어차피 민주당 간판으로 게임이 안 되는 곳이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거구이다. 그러나 이 선거구에 민주당은 진보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자신들의 후보를 냈다(물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는 또 다른 문제인데 이는 다음 기회에 논의하고자 한다). 이 역시 민주당이 반MB연대에 관심이 없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사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전주의 덕진도 마찬가지다. 이미 "'68 시카고'를 보면 '4.29 재보선'이 보인다"(2009년 3월 18일자)라는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아무리 자신의 옛 지역구에 기회가 생겼다고 하지만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수도권의 지역구를 버리고 자신의 텃밭에 내려가 출마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일단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한 이상 민주적 경선을 통해 주민들이 후보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정도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을 배제하기 위한 하향식 공천을 통해 선거판을 정동영 대 민주당의 구도로 만든 바, 그 같은 분열적 리더십이 과연 반MB 연대인지, 그리고 MB정권심판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민주당은 4.29선거를 이명박 정권 심판의 장이라고 주장하며 반MB 전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이 진심이라면 최소한 부평을 공천에 대해 사과하고 후보를 교체하는 한편 울산북구의 후보를 사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바엔 반MB 전선과 반MB 연대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럴 때 쓰는 좋은 표현이 있다. "죽었다. 영원하라"이다. "반MB 연대는 죽었다! 반MB 연대여, 영원하라!"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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