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비판가였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이여, 편히 잠드소서.
저는 노무현의 죽음을 보면서
좀 다른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른바 대통령제의 비용 혹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취약점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무흠결의 정치체제가 결코 아닙니다. 전체주의에 비해 상대적 우월성을 가질 뿐입니다.
민주주의를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정치체제 내지 이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정치적 데마고기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전체주의보다 좀 더 우월한 정치체제일 뿐입니다. 많은 흠결과 구조적 취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국식 군주제의 미국적 변형태인 대통령제는 우리가 흔히 내각제라 부르는 의회제에 비해 효율성과 능률성의 장점이 있는 반면 권력의 집중과 남용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한국과 같은 단극자장(single magnetic)의 사회, 소용돌이의 정치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더욱 심할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제와 권한남용은 개인의 퍼스낼리티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특히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의 대통령제보다도 권력의 집중과 남용의 특징이 두드러졌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제의 역사를 보면 1827년 John Adams 대통령 시기, 1851년 Millard Fillmore 대통령 시기, 1861년 Abraham Lincoln 대통령 시기, 1885년 Grover Cleveland 대통령 시기, 1911년 William Taft 대통령의 시기 등 초기 미국 대통령제의 현실에서도 부패와 엽관제의 폐해가 극심했습니다. 가장 가까이는 클린턴과 부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부패, 권한남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1919년 우리가 잘 아는 Woodrow Wilson시기에 이르면 대통령제의 제도적 특성상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권한남용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정치권과 언론,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됩니다.
전두환, 노태우처럼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할 정도의 헌정체제를 뒤흔드는 중대범죄가 아닌 이상 대통령 패밀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권한남용은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인식하고 체제의 안정을 위해 묻어두는 관행이 확립됩니다. 이를 perversion doctrine이라고 합니다. 이는 법에 명시된 조항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닥트린입니다. 미국 대통령제의 안정성을 가져온 요인은 바로 이러한 건설적인 관행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제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참조할만한 부분입니다.
노무현의 600만달러는 서민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돈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저는 노무현과 그 패밀리의 '부주의한 행태'를 찬양하거나 변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그 오랜 시간 동안 털고 털어서 나온 최종 액수가 6백만 달러라면 한국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간주해도 될만한 액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대통령이 1년 동안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쓸수 있는 돈이 대통령실에 배정된 특수활동비 100억, 행정안전부에 자치단체 교부금 명복으로 배정된 450억 등 550억입니다. 2007년 예산기준으로 대략 그렇습니다(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1년에 550억, 5년이면 2750억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국 대통령의 권한과 위상을 생각하면 정말 600만 달러, 즉 60억 정도는 많은 액수가 아닙니다. 또 이 돈이 직접적인 이권사업에 대한 청탁과 관련되었다는 정황증거도 없습니다.
우리 한번 왜 이번 사건이 발생했는지 생각해 볼까요?
사실 이 사건은 김영삼, 김대중정권에 대한 반면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식들을 국내에 두면 사고를 치니까 아예 해외로 보내버려 사고의 근원을 없애버리자. 뭐 이 정도의 아이디어에서 아들과 딸을 미국에 보내는데 비용이 필요했겠지요.
대통령의 아들과 딸을 일반유학생과 같은 수준의 기숙사나 아파트에서 살도록 하는 것은 국격이나 보안상의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의 검찰소환과 기소, 재판이라는 국격의 손상을 감수할 정도로 치명적인 부패사건도 아닙니다.
극우파들은 항상 자유주의자들의 박정희 비판에 대해 자해적 역사관이라고 거품물고 비난해왔는데, 현 집권 우파세력이야말로 소탐대실의 자해적 사고로 똘똘뭉친 사람들입니다. 철학과 균형감각이 없으면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국정운영은 큰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승만부터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외 없이 대통령의 권한남용, 뇌물스캔들이 존재해왔습니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헌정체제를 유린한 독재를 했거나 국가경제를 뒤흔들 정도의 치부를 한 경우가 아니라면, 승자독식의 한국 대통령제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대통령 패밀리와 관련된 권한남용은 퍼버전 닥트린을 적용하는 관행을 만들때입니다.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정한 비용이 들 듯이, 대통령제를 운영하는데도 일정한 사회적, 금전적 비용이 듭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부시와 체니 패밀리와 관련된 권한남용 스캔들이 있었지만, 오바마나 힐러리 모두 그냥 넘어갔습니다. 또한 오바마와 힐러리도 상원의원 재직 당시 권한남용 스캔들이 선거과정에서 불거졌지만, 언론과 공화당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정도는 대통령제와 연방제의 비용이라고 생각했고 국민들도 이를 받아들였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건설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노무현 정도의 스캔들은 한국 대통령제의 비용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이명박과 검찰, 언론의 천박성과 부질없은 권력욕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정치에서 검찰은 더 이상 법의 수호자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스스로 내다버렸습니다.
안타깝지만 노무현이야말로 정치의 사법화(JOP), 다른 수단의 정치(PBOM)의 희생양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과 함께 이 기회에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 취약성(비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입니다.
노무현의 자살이 제2의 촛불정국으로 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이에나에서 순한 양으로 변신한 한국 언론, 특히 조중동의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국민들에게 쫓겨나고, 군인들에게 쫓겨나고, 최측근의 총에 맞아 죽고, 국민학살과 천문학적 축재로 감옥가고, 자살하고, 또 무엇이 남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보다 바람직한 자세 혹은 태도라고 할까요?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은 모든 국민이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원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자의적으로 이러한 자발적 행위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집권세력이라는 이유로, 심지어는 파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무현의 조문참여를 가로막는 노사모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결코 한국정치의 밝은 면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조문을 둘러싼 노사모의 편협한 행태야말로 노무현을 당파적 인물로 가두어 버리는 저급한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무현의 명예에 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승화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분노의 직접적 표출보다는 분노의 승화가 망자를 역사 속에 더 빛나게 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요?